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덜란드 공화국 (문단 편집) == 독립과 네덜란드 공화국의 탄생 == 지금은 흔히 네덜란드 공화국이라고 하나의 국가인것같은 명칭으로 부르지만 본래 네덜란드라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[[합스부르크 가문]]의 군주가 현재 네덜란드 지역에 있던 여러 작은 나라들의 군주 자리를 겸임하고 있던 [[동군연합]]일 뿐이었다. 이후 합스부르크의 [[카를 5세]]가 신성 로마 제국 황위는 동생 [[페르디난트 1세]]에게, [[저지대 국가|저지대(네덜란드)]]와 스페인은 자신의 장남 [[펠리페 2세]]에게 각각 물려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분할상속을 시전하면서(...) 저지대 나라들은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국왕 펠리페 2세와 동군연합 상태가 되고 스페인의 간섭을 받게 된다. 이 저지대 나라들(low countries) 중 북부의 7개 나라들은 [[네덜란드 독립전쟁]]을 통해 동군연합으로 재위하던 펠리페 2세의 군주 자리를 폐지해버리고 공화국이 되는데 독립전쟁에서 공을 세웠던 오라녀 공 빌럼이 군주가 아닌 스타트허우더([[총독]])로서 이 저지대 7개 나라들의 명목상 [[국가원수]] 직책을 겸임하는 형태로 재임하게 된 것이다. 명목상 네덜란드 공화국은 하나의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한 사람이 동시에 7개국 각각의 총독([[스타트허우더]])이라는 직책들을 겸직하고 있는 상태라는 독특한 정치체였기 때문에 일곱 네덜란드(저지대) 연합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. 이후로도 빌럼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네덜란드 공화국의 총독(Stadthouder/스타트허우더)을 맡았다. 이름은 총독이지만 합법적으로 자리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므로 사실상 (제한된) [[실권]]까지 있는 [[국왕]]이나 다름없었다.[* 나폴레옹 전쟁 이후부터는 아예 합법적으로 세습이 가능한 왕조가 된다.] 사실 명색이 공화국인데 이런 [[세습]]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. 주로 계승이 이루어질 때 지지하는 주와 반대하는 공화파 주가 갈려 대치하다가, 오라녜 공이 회유와 협박, 심지어 공화파 지도자 살해[* 대표적으로 [[영란전쟁]]을 승리로 이끌었던 총리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%EC%9A%94%ED%95%9C_%EB%8D%94%EB%B9%97|요한 드 비트]]가 [[윌리엄 3세|빌럼 3세]] 세력에게 수도 한복판에서 백주 대낮에 살해당했다.] 등으로 총독 직을 얻어내거나, 외교 형세가 불리해지면 통합된 [[리더십]]을 제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세력인 오라녜 공을 공화파주가 울며 겨자먹기로 추대하는 식이었다. 실제 행정은 '홀란트 주 법률고문(Raadpensionaris)' 이라는 행정관이 사실상의 국무총리가 되어 연합 각 구성국의 의회를 조율하며 이루어졌다. 두세기 후 독립하게 되는 [[미합중국]] 또한 군주가 없는 공화국+여러 [[구성국]]들로 이루어진 [[연방제]]라는 이 네덜란드 공화국과 상당히 비슷한 국가 체제를 수립하게 된다. 실제 미국(미합중국)과 네덜란드 공화국의 독립과 국가수립 과정은 상당히 비슷한 특징이 많은데 제국(네덜란드-[[스페인 제국]], 미국-[[대영제국]])의 지배를 받던 여러 속국들이 단합해 독립전쟁을 일으켜 외국의 지원을 받아 승리한 후 연합 형태의 공화국이 되었다는 것, 독립전쟁의 발단에 세금 문제로 인한 지배국과 현지의 부유한 상인 계층간의 갈등이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, 국가 수립 과정에서 [[칼뱅]]주의 개신교도들(네덜란드-개혁교회, 미국-청교도)과 기존 교회(가톨릭, 성공회) 간의 갈등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, 독립 과정에서 한명의 지도자가 큰 역할을 했고 초대 국가원수가 되었다는 것(네덜란드-[[빌럼 1세(오라녀)|빌럼 1세 판 오라녀]], 미국-[[조지 워싱턴]])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